오른손 골절로 연장대신 카메라를 들고 나를 지켜봐 준 동생 기세가 있었기에 작업과정을 정리할 수 있었다. 비록 이 사진들에서 망치와 기계소리를 다시 들을 순 없지만 무엇보다 나 혼자만의 땀과 노력만이 아닌 내 가족들의 헌신적인 사랑과 동료, 후배들의 우정이 결과물에 그대로 녹아있음에 기쁘다. 나를 걱정해주신 부모님과 쇳가루 날리는 작업실부터 돌가루 푹신했던 현장 끝까지 나를 도와준 목리창작촌 동료 천성명, 임승천, 이윤엽, 이윤기와 후배 남효욱, 장용수, 이종성, 그리고 내 아내 김민수와 동생 이기세의 노고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작업이었다.
이렇게 작업과정 사진을 정리해 놓고 보니 무언가에 쫓기며 쉴 새 없이 긴장으로 나를 몰아쳤던 지난 4개월의 시간이 다시 생생하게 스친다. 작업 초반, 레이저로 잘려진 수 천 개의 철 조각들이 내 작업대 위에 펼쳐졌을 때, ‘어쩌면 나는 이것을 정해진 시간 내에 다 해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 란 물리적 부담감이 순식간에 ‘내가 과연 종교미술을 할 수 있는 자인가?’ 란 정체성의 질문으로까지 번졌다. 사실 나 자신이 종교적 깊이를 말한다는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다.
여러 가지로 부족한 나를 격려해 주신 조계종 문화부장 탁연 스님과 진행과정에서 많은 조언 해주신 김흥식 전문위원님과 현장감독관 님, 큰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쇳대박물관의 최홍규 관장님, 그리고 끝까지 나를 믿어준 조계종 불교 역사박물관 추진팀 심주완 학예연구사님의 ‘용기’에 감사 드립니다.
2007년 2월 10일 이근세.
작년 겨울, 평소 철 좀 다룬다고 까불어온 난 사천왕한테 아주 처참하게 밟혀 있었다. 사실 종교미술을 하게 된 것 자체가 부담스런 일이었고 그것이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그 작업이 시작되기 전, 나는 매우 자신만만해 있었다. 익숙하게 다뤄온 재료와 기법, 결과물에 대한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 얇은 자존심과 자신감은 딱 그 정도 수준까지였다. 막상 레이저로 잘려진 수천 개의 철 조각들이 내 작업대 위에 대책 없이 펼쳐졌을 때 설마, 어쩌면 이것을 정해진 시간 내에 다 해낼 수 없을지도 모를 것이란 물리적 부담감이 순식간에 알량한 내 자신감을 무너뜨렸으며 내가 과연 종교미술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있기나 한건가 라는 자괴감으로까지 번졌고 급기야는 편지라도 써놓고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그동안 날 지탱해 준 힘은 그래도 철 작업에 대해 내가 키워온 자존감 같은 거였는데 이번엔 분명히 거기에 대한 책임을 져야 될 차례였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심상치 않은 부담감 속에서 작업은 시작됐고 그래도 초반까지는 심리적인 컨디션을 조절해가면서 한편으로 기록과 분석을 병행할 수 있었지만 작업이 막바지로 가면서는 결국 사진 한 장, 글 한 줄을 남길 수 없을 정도의 최악의 상황까지 이르고 말았는데 이유는 어이없게도 종교미술이니, 조형이니, 자존심이니, 심리적 압박 같은 따위의 정신적인 종류의 것이 아니라 부끄럽게도 단지 너무 춥고 몸이 힘들어서 였다. 정신적인 고통은 육체적인 고통에 비하면 사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그때서야 깨달았으니 내가 평소 입으로만 떠들던 노동에 관련된 수사들이 대체 얼마나 낮간지러운 겉멋에 불과했는가...
어쨌든 그때, 그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서 다 쓰러져가는 화성공장을 지켜준 건 전적으로 목리창작촌의 동료작가들과 후배 효욱이, 기세, 용수, 종성이, 아내 민수의 도움이었다. 생각 난 김에 그때의 작업일지와 사진들을 정리해 보기로 한다. 사실 당시에도 네이버 포토로그에 그날그날 작업과정을 기록했는데 대부분 작품이 변화되는 사진들로 당일 작업을 분석하고 다음날 계획을 짜는 자료로 활용됐고 이런 사진을 포함한 총 사진수가 육백장이 넘는다. 이렇게 그때 사진을 하나하나 넘겨보니 초반에는 그래도 요즘처럼 직접 사진도 찍고 여유를 부리다가 작업후반으로 갈수록 기세가 찍은 사진들이 많아지고 짤막한 작업일지에는 끙끙앓는 소리가 점점 많아진다. 나한테는 귀중한 자료로 남게 된 이 사진들은 오른손이 부러져서 날 직접 도와주지 못하고 대신 사진을 찍어준 동생 이기세 덕분이다. 하지만 이 사진들이 담아내지 못한 빠진 부분도 있는데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코와 목으로 절절히 느낀 연기와 분진, 하루 종일 고막을 울리던 그라인더소리, 깔깔이를 찢고 들어오는 칼바람, 그리고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뱉은 내 신음소리 등이 그거다. 어찌됐건 내 느낌에 사진보다 실제의 작업현장은 훨씬 더 춥고 살벌했지만 작업 후반부, 사진 여러 군데에 잡혀있는 내 액션들에 대해서는 미리 자백해야겠다. 사진으로만 보면 꽤나 진지하고 여유로워 보이지만 사실은 육체적 고난에 질려 허둥대는 꼴을 더 많이 보인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