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세가 자라압정집을 만들고
화성공장장이 水宮歌를 고쳐 적다."
용왕앞에 선 자라가 문어에게 가로되,
"너는 우물 안 개구리라. 한 가지만 알고 두 가지는 알지 못하는도다.
요망한 네 용맹을 뉘 앞에서 번쩍이며, 또는 무슨 지식이 있노라고 내 지혜를 헤아리느냐.
참으로 내 재주를 들어보아라.
만경창파(萬頃蒼波) 깊은 물에 기엄둥실 사족을 바투 끼고 긴 목을 움치며 넓적이 엎드리면 둥글둥글 수박이오 편편납작 솥뚜껑이라. 나무 베는 목동이며 고기 잡는 어부들이 무엇인지 모를 터이니 장구하기는 태산이오 평안하기는 반석이라. 남 모르게 다니다가 토끼를 만나 보면 어린아이 젖국 먹이듯 뚜장이 과부 호리듯 이 패 저 패 두루 써서 간사한 저 토끼를 두 눈이 멀겋게 잡아올 것이요, 만일 시운이 불행하여 못 잡아오는 경우이면 수궁에 돌아와서 내 목을 대신하리라."
-수궁가(水宮歌) 中
약 삼백년 후... 두번째 육지에서 돌아온 자라가 용왕에게 가로되,
"생의 말을 들으실진대 토끼의 말을 대신 전하여 올리리이다. "토끼란 것은 천지 개벽한 후 음양과 오행
(五行)으로 된 짐승이라. 병을 음양오행의 상극(相剋)으로도 고치고 상생(相生)으로도 고치는 법이라.
토끼 간이 두루 제일 좋은 것은 맞사오나 대왕은 물 속 용신이시요 토끼는 산 속 영물이라.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올 뿐더러 만일 대왕이 토끼의 생간을 얻어 쓰시면 음양이 서로 불협함이라. 그럼으로 상한 병
에는 토끼의 간이 당치 아니하옵고, 신효(神效)할 것 한가지가 있사오니 그것이 침술(鍼術)이라. 토끼에
게 특별히 귀한 압침(押針)을 얻어왔사오니 이것을 모두 한꺼번에 경혈경락(經穴經絡)에 자입(刺入)하
시면 대왕의 오장육부(五臟六腑)가 자극되고 기(氣)와 혈(血)의 통로가 뚫려 즉시 평복되시오리라 하더
이다."
용왕이 듣고 어이없어 꾸짖어 가로되,
" 토끼의 간이 필요하여 잡아오라고 보냈거늘 이번엔 서슬퍼런 침만 가득 담아와서는 지금 나하고 장난
하자는거냐 발칙 당돌하고도 멍청한 요놈. 네 내 말을 들어라 하니, 천지 사이 만물 가운데에 사람으로
금수까지 한두개도 아닌 저 날카로운걸 생살갖에 박으면 멀쩡한 놈도 죽어 나갈 터, 요놈 언감생심(焉敢
生心)코 어느 존전(尊前)이라고 당돌히 무소(誣訴)로 아뢰느냐. 그 요망한 토끼에게 멍청하게 두번 속은
그 죄가 만 번 죽어도 남지 못하리라. 이번엔 필경 너를 잡아다가 끓는 물에 솟구쳐서 자라탕을 만들어
주겠도다"
자라가 다시 엎드려 왕께 아뢰어 가로되,
"소신은 토끼에게 속아 자포자기(自暴自棄)의 심정으로 삼백년의 세월을 보냈나이다.
제 아무리 토끼가 간사한 짐승이라 하나 내 한 번 속은 것도 생각하면 진저리가 나거든 어찌 두번 속으
리오 옛글에 일렀으되, 하늘이 주시는 것을 받지 아니하면 도리어 그 앙화(殃禍)를 받는다 하오니, 흐지
부지 하다가는 신효의 기회를 잃어버릴 염려가 있을 듯 하오니, 원컨대 대왕은 신의 충심을 신뢰하시옵
시고 어서 급히 이 압침들을 찌르시어 지극히 귀중하신 옥체를 보중케 하옵소서."
자라, 꼬리를 낮추고 침착히 말하거늘 만조백관이 주부의 의사와 언변을 한없이 칭찬하더라.
그 말을 귀 기울여 들은 용왕이 옳게 여기어 크게 기뻐하며 신기히 여기사 친히 압침 하나를 들어 권하여
가로되,
" 별주부는 과인의 망녕됨을 허물치 말라. 경은 정성을 다하여 큰 공을 이루어 돌아왔으니 부귀를 한가
지로 하리라."
그 후.... 용왕의 병세가 파상풍(破傷風)으로 급격히 악화되어 죽자,
자라가 면목없어 뒤통수 툭툭 치고 무료히 입산(入山)하여 들어가니,
뒤로 더이상 별주부의 소식을 다시 전하여 알 일이 없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