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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유기견 개투

 

 

 

 2006년 11월, 목리창작촌 앞마당에 유기견 두 마리가 추위에 떨고 있었습니다.

 

 옆집 할머니의 목격담에 의하면 마당에서 회차한 검은 승용차문이 반쯤 열리더니 개 두 마리가 우르르 굴러 내렸고

 

 그 차는 아랫말 쪽으로 달려 내려갔다고 했습니다.

 

뭐 그곳이 여러 명이 생활하는 공간이고 워낙 잡다한 물건들로 어지러워서 그렇게 보였는지 그 사람들은 거기가 쓰레기장인줄 알았나 봅니다.

 

 승천이가 성명이 작업실에서 점토를 덮어 논 이불을 꺼내 와서 땅바닥에 깔아주었습니다.

 

 개 두 마리는 꼼짝 않고 그 이불위에서 귀를 쫑긋 세운 채 아랫말 쪽을 바라볼 뿐, 우리가 이름이 뭐냐고 물어도 대답을 안했고, 맛있는 과자를 갖다 줘도 절대로 받아먹지 않았으며 줄에 묶여있는 진돗개 까부리와 바람이가 계속 짖어대도 모른 척 했습니다.

 

 밤 열한시가 다되어 제가 공장 문을 걸어 잠그고 시동을 걸려고 마당으로 내려왔을 때도 개 두 마리는 그 자리에서 그러고 있었습니다. 우린 그 상황이 뭔가 모르지만 되게 곤란했습니다.

 

 성명이는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고 했고, 윤기씨는 신발을 벗고 생활하는 공간이라 좀 그렇다고 했고,

 

 승천이는 모든 생명체는 자신의 공간에 들어올 경우 학대받다가 죽는다고 했으며,

 

 저는 원래부터 애완견을 싫어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20분 정도를 그렇게 담배를 피우며 히히덕 농담을 하고 있던 그 동안에도, 윤엽이 형이 잠자고 있던 그 시간에도 개 두 마리는 깜깜해서 보이지도 않는 아랫말 쪽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승천이와 함께 개 두 마리를 이불 채 둥둥 말아 들고서 아직 불씨가 살아있는 제 공장 난롯가에 내려놓고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다음날 저는 공장에서 개 두 마리를 키우기로 어쩔 수 없이 결심했습니다. 이미 모든 친구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분위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이 개들을 키우게 되면 나한테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를 머릿속에 곰곰히 그려보았습니다.

 

 잠깐 일을 시켜볼까도 생각해 봤지만 한숨만 나왔습니다.

 

 저는 우선 농협에 가서 개사료 한 포대를 사왔고 밥그릇도 마련했습니다.

 

 며칠이 지나자 제가 망치소리와 그라인더소리를 잠시 멈추고 담배를 한 대 물고 있을 때면 개 두 마리는 제법 활발하게 공장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왠일 인지 철판바닥을 긁는 그 발톱소리가 싫지만은 않았습니다.

 

 저는 이들한테 뭔가 불러줄 이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놈들한테 각 각 개1, 개2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제가 이들을 처음 본 인상은 '사람같은 행동을 하는, 또는 개답지 않은 이상한 놈들' 이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존재는 그 다워야 아름답듯이 개는 개 다워야 한다는, 그러니까 다분히 본질만 강조된 작명이었습니다.

 

 개원이는 워낙 무뚝뚝한 성격이었지만 개투는 신기한 재주를 가진 개였습니다.

 

 손을 달라고 하면 놀랍게도 웃기 시작하는데 얼굴전체를 가린 털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자세히 보면 그것은 영락없이 씨 익~ 쪼개는 모습이 뭐랄까... 어쨌든 보는 사람 기분이 그닥 좋아지지만은 않았습니다.

 

 왜냐면 그것을 굳이 웃음이라고 쳐주기에는 ‘썩소’에 가까운 이상한 표정이었기 때문입니다.

 

 개투는 사람의 일방적인 기준에 의해 학대받아온,

 

 다시 말해 왜곡된 사랑을 받아온 존재가 분명합니다.

 

 이럴 때마다 이전 주인은 칭찬을 하거나 뭔가 먹을 것을 내줬을 것이 뻔합니다.

 

 전 개투가 그렇게 씨 익~ 웃을 때마다 한 대씩,

 

 처음보는 사람 앞에서 자신의 개인기를 뽐낼 적마다

 

 꼬박꼬박 쫓아가서 그놈의 대갈통을 한 대씩 때려주곤 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개원이가 고구마를 먹다가 목에 걸려 죽고 말았습니다.

 

 제가 난로에서 구워먹던 뜨거운 고구마를 개원이한테만 준 게 잘못이었습니다.  멀리서부터 달려온 개투가 고구마를 빼앗으려던 그 짧은 순간에 돌이킬 수 없는 사고가 일어난 겁니다.

 

 저의 서툰 심폐소생술로는 도저히 개원이를 살릴 수 없었습니다.

 

 개투도, 목리창작촌에 있는 모든 친구들도 그냥 서서 개원이의 죽음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튿날, 저는 윤엽이 형과 함게 삽을 들고 앞산덤불을 헤치고 올라가 그곳에 개원이를 묻었습니다.

 

 저는 혼자 남게 된 개투가 불쌍했습니다. 하루 종일 차갑고 쇳가루 날리는 철판바닥에서 오들오들 떨며 혼자 지내는 개투가 안쓰러운 마음에 깔끔한 윤기씨 방에 몰래 들여놓고 퇴근한 적도 몇 번이나 있습니다.

 

 그렇게 겨울이 가고 봄이 왔습니다. 그리고 여름이 되었고 그 후로도 계절이 몇 번이나 더 바뀌었습니다.

 

 그 무렵, 저는 개투를 아주 미워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개투도 끔찍하게 추웠던 그해 겨울의 기억은 다 잊은 듯 했습니다.

 

 개투는 그렇게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그동안 저의 말을 하나도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제가 오랫동안 개투한테 요구한 사항은 단 두 가지였습니다. 똥과 오줌은 밖에 나가서 해결하라는 것과 제발 그렇게 재수 없게 웃지 말라는 일관된 것 이었습니다.

 

 어떤 낮선 사람이건 가리지 않고 먹을 것만 쫓아다니며 썩소를 날리는 개투의 모습을 볼 때마다

 

 이래선 안된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죽은 개원이가 죽게 된 원인도 사실은 개투의 식탐 때문이라는 생각까지도 하게 되었습니다.

 

 개가 너무 늙어서 치매에 걸린 거라며 잘 보살펴 주라고 말해준 사람도 여럿 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개투에 대한 미움은 점점 커져만 갔습니다.

 

 어느 볕 좋은 날 이었습니다. 제가 오랫만에 세차를 한 후에 차문을 열어놓았는데 개투가 그 안에 들어가 난동을 부려논 겁니다.

 

 저는 어이가 없어서 자동차시트에 누워있는 개투를 확 잡아들었는데 그만 순식간에 개투의 이빨에 손을 꽉 물리고 말았습니다.

 

 만일 그때 빨간색 목장갑을 끼고 있지 않았더라면 아마 광견병에 걸렸을지도 모릅니다.

 

 무지 화가 난 저는 고양이 다루듯 윤엽이 형이 살던 감나무언덕 아래로 개투를 던져버렸습니다. 우발적이지만 그것이 제가 개투를 화성공장에서 쫓아내게 된 결정적 사건입니다.

 

 사실 저는 그때 너무 화가 난 나머지 개투가 이미 한번 버림받은 적이 있다는 사실을 깜빡 잊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주인한테 두 번 버려진 개투를 보살피게 된 건 윤기씨 였습니다. 그 점에 대해 지금도 윤기씨한테는 무척 미안하고 고맙게 생각합니다.

 

 개투가 아랫집 윤기씨한테 내려간 이후로는 저의 기억 속에 개투에 관련한 자세한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확실히 저는 그때부터 더 이상 그해 겨울, 개원이와 개투를 목리에 버리고 간 검은 승용차의 그 사람을,

 

 그리고 자신이 키우던 반려동물을 유기하는 이 세상의 모든 못된 사람들에 대해

 

 '개만도 못한 인간들’이라는 욕을 더이상 할 수 없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2009년 여름, 개투는 심장사상충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전 아직도 개투의 그때 나이가 몇 살인지 모릅니다. 


 

 아랫집마당에서 조용히 눈을 감고 있던 개투를 맨 처음 발견한 저는 정훈이, 진홍이와 함께 기억을 더듬어 앞산 개원이 곁에 묻어주었습니다.

 

 시간이 많이 흘러 이렇게 그때 사진들을 보면서 글을 쓰다 보니 개투한테 더욱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평생 진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저처럼 무책임한 사람들에게 학대받으며 살다 간 가엾은 영혼에게 늦었지만 용서를 구합니다.

 

-이천십이년 4월, 화성공장장.

 

 

 

 

 

유기견 개투_ 300*160*275mm,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