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조계사 일주문 앞에서 도문스님을 처음 만나 뵌 시점은 지난 2010년 여름 이었다. 조계사는 한국불교의 본산 이지만 가람배치의 한계 때문에 사천왕문이 없다고 하셨다. 스님께서는 그런 안타까운 마음에서 꽤 오래전부터 뭔가 다른 형식의 사천왕 불사에 대한 염원을 갖고 계셨다고 하셨다.
난 이미 지난 2007년, 불교역사박물관에 철부조 사천왕상을 어렵게 설치했던 경험이 있었다. 모든 상황이 그 당시와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그저 소소한 개인의 관점이 담긴 잡다한 물건들을 만들어온 나로서는 성물을 만든다는 자체에 대한 부담감이 앞섰다. 또한 전통장엄을 또 다른 기법으로 해석해야 하는 문제와 동시에 서울 도심에서 공공성에 부합해야 한다는 요건을 충족해야 하기에 이번에도 적지 않은 어려움을 예상할 수 있었다.
내가 조상한 사천왕상은 조선초기불화인 직지사 후불 삼세불회탱의 사천왕상을 모본으로 작업된 결과물이다. 2007년 불교역사박물관 부조 사천왕상 구상 당시, 수많은 사천왕불화자료를 검토하다가 발견한 월인(月印1774년)의 탱화초를 볼 수 있었는데 그 오래된 그림 한장이 당장 나를 직지사 대웅전으로 향하게 만들었었다. 단언 컨데 그가 1미터 장지에 먹선으로 휘갈긴 지국천왕의 아름다움은 선, 당대를 통틀어 누구도 능가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내가 조상한 철조 사천왕상에 불교적, 도상학적 위엄이 있다면 그것은 오롯이 우리 전통 문화유산의 힘이다.
오늘 이렇게 내가 사천왕 네 분께서 서있는 조계사 사천왕문 앞에 있다. 꽤 힘들었지만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물리적 무게 6톤 남짓에 짓눌려 있다가 결국 못 이겨 마음을 비워버린 것 외에 내가 한 것은 별로 없다. 나 혼자만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결과물이 아니기 때문에 꼭 밝혀야하는 사람들이 있다. 부모님... 곁을 지켜주신 당신들의 존재감만으로 너무나 큰 힘이 됐다. 하지만 때때로 힘겨워하는 모습을 모두 숨기지 못했으니 그 과정동안 불효를 한 셈이 돼버렸다. 작업현장에서, 집에서 직접적으로 나한테 힘을 보태준 아내 김민수, 2천조각이 넘는 스테인레스 조각을 다듬어준 후배 박진홍, 장장 1년 동안 컴퓨터 도면을 맡아준 보석디자이너 이주연씨, 또 여러 실무적인 지원을 해주신 성진스님, 서지원 계장님을 비롯한 . 조계사 종무원들… 그리고 나를 믿고 오랜 시간 기다려주신 주지스님… 전통형식을 넘어선 위험한 파격을 선택하신 도문스님께 깊은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