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stomer 5922 장경이 님
밑빠진 화병
밑빠진 화병
장경이님을 위한 화병_ 66*66*155mm, 2005
불을 등지고 앉아 있었다.
낮선 사람들을 데리고 들어온 윤엽이 형의 슬리퍼 끄는 소리가 경쾌하다. 그 중, 꽃을 들고 있는 사람. '지금까지 이곳 목리에는 여자가 드나든 적이 없다’라는 생각이 스치며 가벼운 인사를 나누던 순간, 그녀는 들고 있던 꽃을 화덕 앞에 내려 놓았다.
낮선 사람들을 데리고 들어온 윤엽이 형의 슬리퍼 끄는 소리가 경쾌하다. 그 중, 꽃을 들고 있는 사람. '지금까지 이곳 목리에는 여자가 드나든 적이 없다’라는 생각이 스치며 가벼운 인사를 나누던 순간, 그녀는 들고 있던 꽃을 화덕 앞에 내려 놓았다.
나는 곧바로 그녀를 향해 불 앞에 꽃이 위험하니 '주의'하라는 의미의 멘트를 날렸는데 그녀는 그 말을 본인에 대한 ‘경계’로 인식한 듯 당황하며 황급히 맞은편 나무작업대 위로 꽃을 옮겨 놓았다. 그럭저럭 그들이 구경을 마치고 내려간 후, 나는 작업대 위에 안쓰럽게 누워있던 꽃을 아쉬운 대로 주변에 있던 배관파이프 연결부속에 꽂아 두었고 일하는 중간 중간 그 꽃을 보며 잠시 쉬어가곤 했다. 이미 시들어버린 그 꽃은 밑 빠진 화병에서 그대로 꽤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켰다. 늦었지만 나한테 들꽃을 선물한 장경이 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파이프 부속의 밑을 막아서 만든 이 화병을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