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이 막 떨어지기 시작한 초가을 날이었다.
구 관장님과 나는 미술관 테이블에 앉아 내년 봄 완공될 구하우스 별관건물에 설치할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몇 달 전, 철대문 설치로 시작된 논의였지만 여러 고민 끝에 건물 입구를 지키는 문지기의 의미로 융이를 만들어 세우기로 결정한 터였다.
대략적인 작업일정을 잡고 우린 설치장소를 둘러보기 위해 밖으로 나왔는데 옆에서 잠들어있는 줄 알았던 융이가 어느새 따라 나와 거기, 바로 그 자리에 먼저 가 앉았다.
“자,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돼? 어서 찍어봐”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날 쳐다보는 녀석의 표정과 눈빛이 어느 때보다 정확히 사람 같았다.
“너. 우리대화를 모두 엿듣고 있었던 거냐?”
그런데 최근 피부병으로 수척해진 털빛 때문인지 땅에 떨어진 낙엽들 때문인지. 사진을 어떻게 찍어 봐도 녀석의 모습이 쓸쓸하게 담겼다.
그때 관장님께서 혼잣말처럼 말씀하셨다.
“작품은 언제까지나 저기 서 있을 텐데 나중에 융이가 가버리면 슬퍼서 어떡해...“
축소모델링을 위한 철판이 작업실에 도착한 다음날, 구관장님의 전화를 받았다.
“융이가 많이 아파...“
미술관을 다녀온 그날로부터 불과 한 달도 안 지난 시점이었다.
불 꺼진 미술관에 내가 들어서자 침대에 누워있던 융이가 말없이 꼬리를 툭 툭 흔들어주었고 그게 마지막이었다.
지난 10년 동안 나와의 ‘인’연.
수 많은 예술작품들에 둘러싸여 풍요로운 삶을 산 열두 살 리트리버.
융이가 다음 생에는 훌륭한 예술가로 태어날 거라 믿는다.
융, 242x200x200mm, 철판에 유화,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