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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와인똥꼬주걱2008/11/24 00:56

원래부터 술을 잘 못 먹던 내가 잠자리에 들기 전에 수면제 대용으로 술을 마셔온 것도 벌써 삼년이 지났으니 이젠 부담스런 술자리 모임에서 술을 못한다고 빼는 것도 맞지 않는 얘기가 돼 버렸다.


그렇게 내가 꽤 오랜 기간 잠을 청하려고 먹어온 술은 맥주다. 하고 많은 술 중에 맥주인 이유는 맥주가 좋아서라기 보다 소주의 경우 그 역하고 비린 냄새가 싫어서다. 이렇게 내가 알고 있는 술 선택의 범위란 고작 소주 아니면 맥주였다.


하지만 맥주 역시 나한테는 그리 편하지 않은 술이다. 특히 밤에 소변이 자주 마려워서 깊은 잠을 자는 데는 막상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작업실동료 승천이가 이런 말을 듣고서 나한테 권해준 술은 와인이다. 우리 중에서는 술을 가장 잘 먹고 평소 좋은 음식을 잘 찾아서 먹는다는 승천이의 조언은 이럴 때마다 꽤 설득력 있게 들리곤 한다.


마침 그도 요즘 들어 독한 소주 대신 와인으로 바꿨다며  자신이 알고 있는 와인에 대한 해박한 상식을 줄줄이 설명했다. "병 밑의 움푹 파진 홈이 깊을수록 좋은 와인이라고 하더라"는 내가 언젠가 주워들은 빈곤한 풍월까지, 그날 오후시간을 거의 다 와인이야기로 채워 버리고는 내친 김에 우린 마트로 향했다.


“샤또-리비에르“.  이것은 가격대비 맛이 매우 훌륭하다는 승천이가 자신 있게 추천하는 와인이다. '싸또... 샤..또... 리비에르야 리뷔에르야? 그런건 없는데?'


이렇게 수 백 종류가 진열된 와인코너에서 하필 승천이가 추천하는 그 와인은 품절 이었다.


 승천이는 잠시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이것 저것 진열대에서 꺼내들어 라벨을 훑어보기 시작했고 라벨에 씌여있는 글자들은 읽는건지 마는건지 검지손가락으로 병 밑의 움푹 들어간 홈을 연신 만지작 거렸는데... 


수상해 보이는 그 모습이 아무래도 와인에 대해 더 이상의 지식은 별로 없는 듯 보였다.


그 날, 그렇게 승천이와 내가 더듬었던 와인병의 똥꼬는 수 십 개가 넘는다.


 그 후로도 승천이와 나는 가끔씩 퇴근길에 와인쇼핑을 즐기게 되었으며 한동안 병 밑의 깊이가 와인 선택의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임승천을 위한 와인똥꼬주걱_ 160*80*30mm,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