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이 건네는 따뜻한 농담 - 활동가 윤돈휘 2007/2/11
“철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보십시오”..라는 어느제철 회사의 이미지광고는 우리주변의 사소한 일상에서 철을 생략한 채 보여줌으로서 철이 없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세계, 곧 철은 인류 문명의 골간이라는 거대 문명사적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이 이미지광고에 따르면 인류는 아직 ‘철기 시대’다. 하지만 디지털 문명의 뒤켠 으로 밀려난 철. 이근세의 작업은 ‘화성공장’이라는 철 공방에서 망치와 집게로 쇠를 벼려 철이 가진 이면의 속성, 즉 따뜻하고 부드러우며 소박한 측면을 드러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근세는 일상에서 때때로 발견되어지는 가벼움에 주목한다. 그리고 그것에 진지하게 접근하고 걱정스러울 만큼 집착한다.
동네 보건소장, 영어교사, 동료조각가, 사회운동가등 주변인물 들과의 일상적 만남에서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인상의 단편을 기록하고, 그 인물들과의 관계에 서 이야기 구조를 짜고 그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작가에게 포착된 그 인물들의 관계망 속에서 작가는 주변인물들이 필요하지만, 실제 사용하기에 부적합한 도구를 철을 가공해 제작한다. 인체 조각가에게는 인공안구 이식 집개, 영어교사에게는 밑 빠진 화병, 보건지소장 에게는 돼지 우체통, 사회운동가에게는 시위촛대 등 고된 노동을 통해 철물 도구는 당사자에게 전달된다. 이렇게 ‘도구적’관점에서 사용자의 실생활에 적합하게 사용할 수 없는 철물‘도구’들은 독자적인 것, 즉‘사물’ 자체로 존재하는 철이 가진 재료의 일반적 속성을 역전시켜 일상적 ‘관계’의 흔적으로 그가 만든 ‘철물’의 역할을 확장시킨다. 그러나 이근세의 철작업은 철의 물적 특성을 다루는 것이 아니다.
그의 고된 노동과 장인정신은 철을 통한 육중한 메시지를 의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물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사뭇 따뜻하고 역설적인 농담을 건내고자 하는 수단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