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건축가에게 가구를 디자인해본 적 있냐고 묻는다면 요리사에게 드레싱을 만들어본 적이 있냐는 질문만큼이나 우문愚問일 것이다. 공간을 설계하는 그들에게 자신의 공간에 어울리는 가구를 디자인하는 것은 작업의 연장이자 화룡점정일 테니까. 최근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서울시립미술관의 비트라 의자전에 전시되는 대부분의 의자들은 세계적인 유명 건축가들이 디자인한 작품이다. 아쉽게도 그곳에는 한국 건축가의 작품이 없다.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건축가가 디자인한 가구가 상품화되는 통로가 막혀 있는 듯하다. 상품화를 최종 목표로 국내 유명 건축가들이 디자인한 가구를 전시, 기획한 쇳대박물관의 ‘건축가의 가구-열두 명의 건축가가 만든 금속 가구전’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 주목할 만하다. 국내 최초로 시도하는 건축가들의 가구전, 어쩌면 이곳에 전시된 작품들은 미래의 비트라 의자전에서도 만나게 될지 모를 일이다. 전시회에 소개될 작품 중 일부를 미리 만나보았다. 우리나라 최고의 건축가들이 만든 가구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땅 위에서 올라오거나 땅 아래로 내려가거나 장윤규 씨의 ‘스프링 테이블’ 원래‘까오’의 전신은 나무였다. 나무 의자는 100% 나무로 만들어지기 힘든 반면 금속은 온전히 그 재료만으로 만들어질 수 있었다는 점에서 금속 까오의 태생은 보다 순수하다 할 수 있다. 새롭게 태어난 까오의 선택은 티타늄. 티타늄은 다른 금속에 비해서 강도 대비 가볍다는 강점이 있기에 보다 날렵하고 산뜻한 형태를 만들어낼 수 있는 재료. 만약 다른 금속을 사용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거대한 흔들의자가 탄생했을지 모른다. 어찌 보면 탱크처럼 보인다 싶은 이 흔들의자는 실제로 탱크 구조의 원리가 숨겨져 있다. 험한 지형에서도 포신의 각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탱크처럼 앉는 부분과 몸체가 핀으로 연결, 구분되어 있어 의자가 흔들린다 해도 앉는 부분의 각도는 그대로 유지된다. 그만큼 안정적이라는 것. 황두진 씨는 (주)황두진건축사사무소 대표로 국민 한옥론을 제안,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당신의 서울은 어디입니까?>(해냄출판사)의 저자이기도 한 그는 최근 서울에 한옥을 짓고자 하는 이들이 가장 설계를 의뢰하고 싶어하는 건축가이기도 하다. ![]() 수십 개 철봉에도 꽃이 핀다 권문성 씨의 ‘플라워 베드’
신기한 일이다. 벽을 뚫고 나오는 수십 개의 철봉들이 한데 모여 벤치가 된다. 물론 철봉의 뾰족한 끝마다 무른 나무 공을 꽂아 몸에 직접 닿는 부분의 날카로운 공격을 막아준다 해도, 제아무리 철이 강하고 단단하다 해도 저토록 가는 철봉들이 사람의 몸을 지탱할 수 있을까. 놀랍게도 답은 ‘그렇다’. 제목 ‘플라워 베드’. 꽃밭으로 이름 지어진 이 벤치는 독립된 의자라기보다는 벽에서부터 시작된, 벽의 일부분이고 벽의 연장이다. 탄소봉(강한 탄성을 지닌 금속) 수십 개가 신기하게도 그곳에 앉는 사람의 무게를 지지할 뿐만 아니라 다소의 쿠션감마저 느끼게 한다. 철은 무겁고 단단하다는 선입견을 여지없이 무너뜨린 것. 수많은 가느다란 봉이 겹쳐지면서 만들어진 이 작품은 사람들에게 과연 저것은 무엇일까 하는 호기심을 자아내게 하고, 그 위에 살짝 앉아보는 용기를 내게 하여 어느새 본모습인 벤치로서의 역할을 드러낸다. 권문성 씨는 (주)건축사사무소아뜰리에17 대표이사로 안동교회와 임진각을 레노베이션했고 일신방직그룹 청담동 사옥을 설계했다. 1. 왼쪽 테이블에 스프링을 매단다는 발상으로 상판과 스프링이 하나의 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다리 역할을 하는 스프링이 매력 포인트.
2. 제작협조 현대 티타늄 3. 왼쪽 벽을 뚫고 나온 탄소봉 끝에 나무 공을 달아 벤치를 만들었다. 철봉들은 서로 촘촘한 간격을 유지, 무게를 지탱하는 힘을 만들어낸다. ![]() 도시와 건축 사이의 틈 또는 여백 승효상 씨의 ‘긴 의자.가로등'
승효상 씨는 최근 그가 설계한 건물인 중국 차오와이 소호의 로비에 놓을 것을 염두에 두고 벤치와 가로등을 디자인했다. 그는 가구란 기능성이 있는 조형물이자 공간과의 연계성을 지니고 있는 공간 속의 부속물이라 여긴다. 그렇기에 그가 만들어낸 가구는 공간의 시작이자 공간의 축소판이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자면 이번 전시회에 소개되는 반듯한 듯하면서도 부정형적인 긴 의자를 통해 그것이 놓이게 될 차오와이 소호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긴 의자와 가로등은 ‘빈자의 미학’에 이어 그가 던진‘어번 보이드urban void’라는 화두에 맞닿아 있다. 어번 보이드, 도시와 건축 사이에 존재하는 그 틈에 이것이 자리하게 될 것이고 이곳에 앉아 있다 보면, 빛을 받다 보면 공간은 물론 시간의 여백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 대표 건축가 승효상 씨는 이로재 대표로 대학로 쇳대박물관, 웰컴시티, 수졸당 등을 설계했다. 가냘픈 철망의 부드럽지만 단단한 다짐 육중한 쇠의 시각적 다이어트 최문규 씨의‘ha’
테이블 ‘ha’는 ‘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쇠는 무겁다, 차갑다’라는 답을 쥐고 이를 거스르는 가구를 디자인한 것. 쇠의 무게를 최소화한 길고 얇은 스틸 판재 두 겹을 구조적으로 연결하여 ㄷ자 모양의 테이블로 접었다. 또한 쇠의 차가운 기운을 사탕처럼 달콤한 컬러로 페인팅해 녹여냈다. 두 겹 판재 사이의 좁은 공백 역시 철이 가진 육중함을 시각적으로 상쇄시키는 효과를 낸다. 테이블 곳곳의 귀여운 동그라미는 의외의 위력을 발휘한다. 위판의 타공은 폭이 160cm 정도인 테이블 상판의 무게를 줄여주고 아래 판의 프레스로 눌러 동그랗게 파인 문양은 위 판의 힘을 지탱해주는 역할을 한다. 최근 동그라미에 대한 그의 지대한 관심이 가구를 통해 일부 실험된 것. 쇠의 본성 파악이라는 진지한 출발점을 지닌 테이블 ha는 최문규 씨 지인의 득녀를 축하, 그 이름 앞자를 따서 지었다. 전시회에서는 또 다른 지인의 딸 ‘보영’의 이름을 딴 접시‘bo’도 함께 전시할 예정이라고. 최문규 씨는 연세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로 인사동 쌈지길, 헤이리 딸기를 설계했다.
1. 왼쪽 긴 의자는 누군가와 함께 그러나 서로 각자 앉을 수 있도록 디자인되었다. 자리 사이의 틈은 그가 던진 화두 어번 보이드를 연상하게 한다.
건축가의 가구전뿐만 아니라 쇳대박물관은 지난해 열.쇠.전(열 사람의 쇠작업 전시) 등 여러 작가들에게 한 가지 주제를 던지는 전시를 하고 있다. 이러한 전시 기획의 의도는? 쇳대박물관에서 기획하는 전시는 차별성, 전문성, 자유로움 등을 모토로 한다. 한 가지 주제가 각 분야 전문가들에 의해 자유로운 해석을 만나는 모습은 언제나 즐겁다. 다음 전시회는 ‘조각가의 생활용품전’이다. 재료에 대한 제한도 없고 해석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생활용품을 조각가들은 과연 어떻게 풀어낼지 사뭇 기대가 크다. “그들의 가구에서 철의 유연함을 발견했다” '건축가의 가구-열두 명의 건축가가 만든 금속가구전’은 3월 24일(금)부터 4월 30일(일)까지 쇳대박물관 2?층 전시실에서 열린다. 이 전시회에서는 권문성, 김영섭, 김영준, 김인철, 김종규, 민현식, 서혜림, 승효상, 장윤규, 최두남, 최문규, 황두진 씨 등 국내 유명 건축가 12인이 디자인한 가구 총 32점을 만날 수 있다. 월요일 휴관. 문의 02-766-6494
출처_행복이 가득한 집 기자/에디터 : 심의주 기자 / 사진 : 박찬우 취재 협조 쇳대박물관 |
보도자료